AI가 유명인 얼굴을 '빌려서' 장편영화를 만들었습니다 — 힉스필드가 증명한 것
세계 최초로 '허락받은' 유명인 디지털 복제본만으로 만든 장편영화가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일은 화면이 아니라 계약서에서 벌어졌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2026년 8월 5일, 뉴욕에서 AI 영상 기업 힉스필드(Higgsfield AI)가 장편영화 《The Cully Hill Boys》를 처음 공개했습니다. 러닝타임 110분짜리 액션 코미디인데, 모든 장면이 생성형 AI로 만들어진 완전 AI 장편입니다. 여기까지는 "요즘 그런 것도 나오는구나" 싶으실 텐데, 진짜 포인트는 따로 있습니다. 이 영화가 실제 유명인의 '법적으로 라이선스된 얼굴'만으로 주연을 세운 세계 최초의 장편이라는 점입니다.
출연진은 실존 인물 네 명입니다. UFC 2체급 챔피언 이스라엘 아데산야, MMA 베테랑이자 배우인 퀸턴 '램페이지' 잭슨, 라이브 스트리머 N3on, 스트리트볼 크리에이터 맷 키아티피스. 이들의 '허락받은' 디지털 복제본이, 훔친 보트에 실린 장물 때문에 라이벌 범죄 조직 사이에 끼어버린 세 명의 동런던 래퍼 이야기를 연기합니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마셔야 할 게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극장이나 넷플릭스에 걸려고 만든 게 아닙니다. 힉스필드가 자사 주력 제품인 '시네마 스튜디오(Cinema Studio) 4.0'을 스튜디오·에이전시·브랜드에 보여주고, "유명인이 자기 얼굴을 이렇게 라이선스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실제로 증명하려고 만든 쇼케이스에 가깝습니다.
숫자가 좀 놀랍습니다
힉스필드가 공개한 제작 수치를 보면 왜 업계가 술렁이는지 이해가 갑니다.
- 총 제작비 약 200만 달러, 이 중 약 100만 달러가 AI 연산(컴퓨트) 비용입니다.
- 단 4주 만에, 100곳이 넘는 로케이션에서, 약 1,000컷을 전부 4K로 뽑았습니다.
- 제작진은 28명이고, 이 중 약 40%는 AI를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는 전통 영화 인력이었습니다. 이들은 힉스필드가 무료로 푼 교육 과정으로 빠르게 적응했다고 합니다.
비교 대상은 전작 《Hell Grind》입니다. 95분에 약 50만 달러, 에셋 약 100컷 규모였는데요. 이번 작품은 불과 몇 달 만에 제작 규모를 약 10배로 키운 셈입니다. 힉스필드 말로는, 비슷한 야심을 가진 인디 실사 영화라면 보통 1~2년에 2,000만 달러 이상이 든다고 합니다. 이 숫자들이 회사 측 자체 계산이라는 점을 감안해 넉넉히 깎아도, 남는 비용 구조는 어떤 제작사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균형은 잡아둘게요. 4주 일정의 상당 부분은 사람이 한 후반작업이 차지했습니다. AI는 재료를 뽑아줄 뿐이고, 그걸 하나의 영화로 붙이는 편집·색보정·사운드·마감은 여전히 사람 손에 남았습니다. 감독 아홉 명이 동시에 작업한 결과물에 하나의 톤을 입힌 것도 이 사람 손이었습니다.
진짜 포인트는 계약서였습니다
이 프리미어를 '사건'으로 만든 건 화면에 나오지 않습니다. 계약서에 쓰여 있습니다.
출연자들은 딱 두 가지만 제공했습니다. 고해상도 사진과 음성 녹음입니다. 이 두 가지는 보상, 사용 범위, 그리고 제작 전 대본 승인을 정해둔 계약 아래에서 받았습니다. 모든 출연자가 전체 대본과 자기 캐릭터 설정을 미리 검토했고요.
그리고 결정적인 조항은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입니다.
- 원본 소스는 촬영이 끝난 뒤 30일 이내에 전부 영구 삭제됩니다.
- 힉스필드는 그 데이터를 보관하거나, 학습에 쓰거나, 제3자에게 다시 라이선스하는 걸 계약으로 금지당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요, 지금까지 '동의'는 대체로 말뿐이었거든요. 이번엔 그 동의를 '지킬 수 있는 구조'로 계약서에 박아버린 겁니다. 실제로 지난 3년간 할리우드가 싸워서 얻어낸 원칙(SAG-AFTRA 파업으로 만든 AI 동의 조항)과, 미국 의회가 법으로 만들려는 NO FAKES Act의 방향을, 이 영화가 상업 관행으로 먼저 실행해 보인 셈입니다.
시장도 벌써 움직입니다. N3on과 키아티피스를 관리하는 에이전시는 이제 스폰서십·광고와 나란히 'AI 초상 라이선싱'을 정식 상품으로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이 '지켜야 할 약점'에서 '라이선스로 파는 자산'으로 지위가 바뀐 겁니다.
힉스필드 프롬프트, 뜯어보면 이렇습니다
힉스필드는 완성한 프로젝트를 '프롬프트·에셋 전부 공개' 형태로 풀어왔습니다. 공개된 프롬프트를 계열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핵심 원리는 하나예요. 힉스필드 프롬프트는 '이야기'가 아니라 '촬영'을 씁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 약한 프롬프트: "한 여성이 노을 진 발코니에 서 있다."
- 강한 프롬프트: "미디엄 숏, 실크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골든아워의 바다를 굽어보는 대리석 발코니에 서 있다. 얕은 피사계심도, 지는 해의 따뜻한 백라이트가 머리카락에 림 라이트를 만든다, 85mm 렌즈 감."
차이가 보이시죠? 광원과 방향, 렌즈 느낌, 심도, 대기감을 다 적어줘야 합니다.
이미지 계열은 이렇게 나뉩니다. 포토리얼 이미지를 뽑는 Soul, 시네마틱 감성의 Soul Cinema, 실제 인물 사진 20장 이상을 학습시켜 얼굴을 고정하는 Soul ID, 그리고 시네마 스튜디오 안에서 쓰는 가공 캐릭터를 만드는 Cast가 있습니다. 요점만 말하면, 가공 캐릭터는 Cast, 실제 인물은 Soul ID로 역할이 갈립니다.
영상 계열의 중심은 시네마 스튜디오입니다. 이건 그냥 프롬프트 입력창이 아니라 '영화 제작 도구'처럼 장르·스타일·카메라 패널로 설계돼 있습니다. 달리·오빗·트래킹 같은 카메라 무브가 이름 붙은 프리셋으로 준비돼 있어서, 매번 프롬프트로 요행을 바라지 않아도 됩니다. 캐릭터 이미지와 로케이션 이미지를 합쳐 키프레임을 만들 땐 오히려 프롬프트를 비워두라고 안내하고요(앵글·조명을 알아서 잡아줍니다).
그리고 실제 숏 단위 프롬프트를 보면 늘 세 층으로 반복됩니다. ① 어떤 모델로 뽑을지(모델 태그) → ② 이 컷이 이야기에서 맡는 역할(한 줄 주석) → ③ 순수 촬영 묘사(시점·렌즈·광원·질감) 순서입니다. 여기에 "텍스트 오버레이 없음" 같은 부정 지시로 원치 않는 결과를 미리 막는 것도 반복 패턴이고요. 정리하면, 힉스필드 방식은 '한 방의 좋은 프롬프트'가 아니라 모델 선택 → 프롬프트 구조 → 진단하며 반복이라는 파이프라인 자체가 노하우입니다.
그래서 한국은요?
크게 세 가지가 걸립니다.
첫째, 국내에도 이미 규범이 있습니다. 2022년부터 시행된 부정경쟁방지법 (타)목이, 널리 알려지고 경제적 가치가 있는 타인의 성명·초상·음성 같은 표지를 무단으로 상업 이용하는 행위를 규제합니다. 사실상 퍼블리시티권이 법제화된 셈이죠. 여기에 초상·성명·음성을 대상으로 한 '인격표지영리권'을 민법에 새로 넣자는 개정안도 입법예고(2022년 말) 후 논의돼 왔습니다. 힉스필드가 계약에 담은 사전 동의·사용 범위 한정·대본 승인·30일 삭제·학습 금지는, 이 국내 규범을 실제 계약서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보여주는 좋은 참고 사례입니다.
둘째, K-콘텐츠 계약 실무입니다. 아이돌·배우·크리에이터의 얼굴과 목소리는 우리 엔터 산업의 핵심 자산이잖아요. 이번 사례는 얼굴을 '무단 사용을 막는 방어 대상'에서 '조건 걸고 파는 수익원'으로 바꾸는 모델이 실제로 굴러간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앞으로 소속사·에이전시가 AI 초상 라이선싱을 정식 사업으로 설계할 때, 삭제 기한·학습 금지·재라이선스 금지·용도 제한·철회 조건 같은 항목이 표준 계약에 들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셋째, AI 디지털 모사권 입법입니다. 미국은 테네시 ELVIS Act, NO FAKES Act처럼 음성·초상의 디지털 복제를 정면으로 규율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전면적인 퍼블리시티권 입법과 별개로, 최소한 AI 측면에서 개인의 얼굴·목소리 복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물론 모든 개인에게 강한 권리를 주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고요. 그래서 동의·보상·용도를 계약으로 정교하게 짠 이번 사례가, 입법의 균형점을 가늠하는 실무 레퍼런스가 됩니다.
마무리
이 영화가 작품으로 오래 기억될지는 관객이 시간을 두고 판단할 몫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세운 선례 — 모든 얼굴이 새로운 기술로 나오기 전에 정당하게 승인됐다는 사실 — 는 그 평가보다 오래 남을 겁니다. 이제 던질 질문도 바뀌었습니다. "AI 영화가 얼마나 좋아질 수 있나"가 아니라, "이 구조 위에서 우리가 뭘 만들 것인가"입니다.
참고: Forbes·Variety·The PR Net 등의 프리미어 보도(2026년 8월), 힉스필드 공식 문서, 법무부 인격표지영리권 민법 개정안 입법예고(2022년 말),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타)목. 제작 수치는 상당수 힉스필드 자체 발표치이며 독립 검증된 값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