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책상 끝으로 조금씩 밀면, 책은 어느 지점에서 떨어질까
책상 위에 책이 한 권 놓여 있어요. 우리가 이 책을 책상 끝으로 조금씩 밀면, 책은 어느 지점에서 떨어질까요. 1편에서 이쑤시개 팽이를 세울 때 쓴 규칙이 여기에도 그대로 쓰입니다. 물건의 무게중심이 받침을 벗어나는 순간 물건이 넘어진다는 규칙이지요. 책의 무게중심은 책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책은 제 길이의 절반까지 책상 밖으로 나가도 떨어지지 않아요. 절반을 넘으면 책은 떨어지고요.

책 한 권은 무게중심이 책상 끝에 올 때까지, 제 길이의 절반까지 나갑니다.
그러면 우리가 책을 여러 권 쌓으면 어떨까요. 맨 위 책을 지금보다 더 멀리 내밀 수 있을까요. 저는 이 문제를 처음 만났을 때 반 권 남짓에서 끝나리라 짐작했습니다. 그 짐작은 크게 틀렸어요. 어디가 틀렸는지 우리가 오늘 하나씩 세어 봅니다.
책 두 권은 책상 밖으로 4분의 3까지 나갑니다
책 두 권을 준비합니다. 두 권의 길이와 무게는 같다고 하고, 길이를 1이라 부르겠습니다.
우리는 계산을 맨 위 책부터 시작해요. 맨 위 책은 아래 책 끝에서 2분의 1까지 나갈 수 있습니다. 위 책의 무게중심이 아래 책 끝에 오는 자리가 한계이지요.
다음은 아래 책 차례입니다. 아래 책은 책상 끝에서 얼마나 나갈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우리가 두 권을 한 덩어리로 보아야 해요. 아래 책 혼자가 아니라 두 권 전체의 무게중심이 책상 끝 안쪽에 있어야 하니까요. 위 책의 무게중심은 아래 책의 끝에 있습니다. 아래 책의 무게중심은 아래 책의 한가운데, 그러니까 끝에서 2분의 1 자리에 있고요. 두 책의 무게가 같으니 덩어리 전체의 무게중심은 두 중심의 한가운데에 옵니다. 아래 책 끝에서 4분의 1 들어간 자리예요. 그래서 아래 책은 책상 끝에서 4분의 1까지 나갈 수 있습니다.
계산을 왜 맨 위에서 시작했는지 여기서 짚고 가지요. 맨 위 책 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래 책 위에는 책이 한 권 얹혀 있고요. 층이 내려갈수록 얹힌 무게가 늘어나니, 우리는 셈이 가장 단순한 꼭대기부터 자리를 정하고 한 층씩 내려옵니다.
두 길이를 더하면 합은 2분의 1 더하기 4분의 1, 4분의 3이에요. 책 두 권으로 맨 위 책은 제 길이의 4분의 3까지 책상 밖으로 나갑니다.

두 권 전체의 무게중심이 책상 끝 위에 오면, 위 책은 2분의 1, 아래 책은 4분의 1까지 나갑니다.
네 권이면 맨 위 책이 통째로 허공에 뜹니다
우리가 같은 계산을 한 권씩 늘려 가며 되풀이해요. 세 권을 쌓으면 셋째 책은 6분의 1까지 나갑니다. 네 권을 쌓으면 넷째 책은 8분의 1까지 나가고요. 위에서부터 내민 길이를 적으면 이렇게 됩니다.
12, 14, 16, 18
우리가 네 값을 더해 보지요. 분모가 다르니 먼저 분모를 하나로 맞춰야 해요. 2, 4, 6, 8이 모두 들어가는 가장 작은 수는 24입니다. 2분의 1은 24분의 12, 4분의 1은 24분의 6, 6분의 1은 24분의 4, 8분의 1은 24분의 3이 되지요. 이제 분자끼리 더하면 계산은 이렇게 됩니다.
1224 + 624 + 424 + 324 = 2524
이 합은 1보다 큽니다. 네 권이면 맨 위 책 전체가 책상 밖 허공에 뜹니다. 맨 위 책 아래에는 책상이 없어요. 아래 책들이 조금씩 물려 있을 뿐입니다.

네 권을 다 밀면 맨 위 책은 책상 끝을 통째로 벗어납니다.
독자께서 책 네 권으로 직접 쌓아 보시길 권해요. 표지가 단단하고 크기가 같은 책이 좋습니다. 요령은 쌓는 순서에 있어요. 네 권을 먼저 가지런히 포개 놓고, 맨 위 책부터 밀어냅니다.

실험은 네 권의 오른끝을 책상 끝에 맞춘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맨 위 책을 2분의 1 못 미치게 내밀고, 그다음 위에서 두 권을 함께 4분의 1 못 미치게 밀고, 위에서 세 권을 함께 6분의 1 못 미치게 미는 식이지요. 종이가 휘거나 책끼리 미끄러지면 실제 탑은 이론값에 못 미치니, 손은 이론값보다 조금 안쪽에서 멈추면 됩니다. 맨 위 책이 책상 모서리를 벗어나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은, 사진으로 보는 일과 손으로 만드는 일이 완전히 달라요.
손으로는 몇 권까지 될까요. 단단한 나무 블록이라면 예닐곱 개까지 세운 기록이 있습니다. 미국 웨슬리언 대학의 물리 시연 기구는 일곱 개짜리이고, 집에서 나무 블록 여섯 개를 세운 실험 기록도 있어요. 책은 표지와 종이가 휘어 그보다 어렵습니다. 권수가 늘수록 새로 미는 몫이 줄어드는 것도 이유예요. 길이 24cm 책이라면 여덟 권째에 맨 아래 책이 미는 몫은 1.5cm, 스무 권째에는 6mm뿐이거든요. 미는 몫이 손끝의 정밀도 아래로 내려가면, 어느 층의 작은 어긋남 하나가 탑 전체를 넘어뜨립니다.
내민 길이의 분모는 2, 4, 6, 8로 커집니다
우리가 내민 길이를 다시 봅니다. 2분의 1, 4분의 1, 6분의 1, 8분의 1. 분모가 2씩 커져요. 각 항을 뒤집은 수(역수)는 2, 4, 6, 8이 되지요. 뒤집은 수들이 2, 4, 6, 8처럼 같은 걸음으로 커지는(등차수열을 이루는) 수열을 수학에서는 조화수열이라고 부릅니다.
'조화'라는 이름은 음악에서 왔어요. 피타고라스(Pythagoras) 학파는 모노코드(monochord)라는 도구로 소리를 쟀습니다. 긴 울림통 위에 현을 하나 걸고, 움직이는 받침으로 짚는 자리를 바꿔 가며 튕기는 악기예요. 현 전체를 튕기면 기본 음이 납니다. 받침을 옮겨 2분의 1 길이를 튕기면 한 옥타브 위의 음이 나고, 3분의 1 길이와 4분의 1 길이에서도 기본 음과 어울리는 음이 나요. 1, 2분의 1, 3분의 1, 4분의 1이라는 자리들이 화음을 만드는 것이지요.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 정수비에서 우주의 질서를 읽었고, 그 뒤로 정수를 뒤집은 수들이 늘어선 수열에는 '조화'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모노코드는 울림통 위에 현 하나를 걸고, 움직이는 받침으로 짚는 길이를 바꾸는 악기입니다. 받침을 2분의 1 자리에 두면 한 옥타브 위의 음이 납니다.
이 합은 어디까지 커질까요?
책을 계속 쌓으면 내민 길이의 합은 이런 꼴이 됩니다.
12 × ( 1 + 12 + 13 + 14 + … )
괄호 안의 합, 그러니까 자연수의 역수를 끝없이 더한 합을 수학에서는 조화급수라고 불러요. 더해지는 항은 점점 작아집니다. 그러니 합도 어딘가에서 멈추리라 짐작하기 쉬워요. 저도 그렇게 짐작했고요.
프랑스 노르망디 사람으로 파리 대학에서 공부한 니콜 오렘(Nicole Oresme, 1325–1382)이 1350년 무렵 이 짐작을 뒤집었습니다. 오렘의 방법은 묶어 세기예요. 오렘은 3분의 1과 4분의 1을 묶습니다. 3분의 1은 4분의 1보다 크지요. 그래서 두 수의 합은 4분의 1을 두 번 더한 값, 곧 2분의 1보다 큽니다. 다음으로 오렘은 5분의 1부터 8분의 1까지 네 개를 묶어요. 5분의 1도, 6분의 1도, 7분의 1도 모두 8분의 1보다 크지요. 그래서 네 수의 합은 8분의 1을 네 번 더한 값, 곧 2분의 1보다 큽니다. 그다음 여덟 개 묶음도, 그다음 열여섯 개 묶음도 마찬가지예요. 2분의 1보다 큰 묶음이 끝없이 이어지니, 조화급수의 합은 끝없이 커집니다. 오렘의 증명은 한동안 잊혔다가, 1647년 피에트로 멩골리(Pietro Mengoli)가 같은 사실을 다시 증명했어요.
책 쌓기에서 이 정리는 이런 뜻이 됩니다. 책이 충분히 많으면 우리는 맨 위 책을 원하는 만큼 멀리 내밀 수 있어요. 한 뼘이든 한 걸음이든, 이론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 대신 합은 아주 느리게 커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손 대신 계산으로 실험을 이어 갑니다. 끝없이 커진다는 말과 빨리 커진다는 말은 다르거든요. 우리가 컴퓨터로 세어 보았습니다. 맨 위 책을 책 두 권 길이만큼 내밀려면 책이 31권 필요해요. 세 권 길이에는 227권, 네 권 길이에는 1,674권이 필요합니다. 한 권 길이를 더 내밀 때마다 필요한 책 수가 일곱 배 남짓으로 불어나는 셈이지요. 책 100만 권을 쌓아도 맨 위 책은 일곱 권 길이 남짓밖에 못 나갑니다.
저는 이 문제의 가장 좋은 자리가 바로 여기라고 생각해요. 책 네 권은 누구나 손으로 쌓을 수 있습니다. 그 네 권에서 나온 2, 4, 6, 8이라는 분모가 현을 짚던 그리스 사람들의 화음과 닿고, 끝없이 커지는 합과 닿아요. 이쑤시개 팽이를 세우던 무게중심 규칙 하나로 우리는 무한 앞까지 왔습니다.
화면에서 직접 밀어 보기
책 네 권이 없어도 해 볼 수 있게 화면을 하나 만들었어요. 손으로 하듯 여섯 권까지만 쌓아서, 책을 잡아 밀고, 너무 밀어 무너뜨려도 보고, 무게중심 단추로 규칙을 눈으로 확인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