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시대에 우리 함께 가자

신뢰라는 이름의 수출 경쟁력

world1000 2026. 9. 28. 17:45
오후 국내 브리핑 · 칼럼2026 · 09 · 28 月

신뢰라는 이름의
수출 경쟁력

개인정보 공동선언과 K-의료AI의 해외 확장이 가리키는 한 방향

2026년 9월 28일 하루, 국내 인공지능 산업에서는 언뜻 서로 무관해 보이는 두 장면이 나란히 지나갔다. 하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통신 3사가 프레스센터에 모여 ‘국민이 신뢰하는 AI·디지털 사회를 위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루닛과 코어라인소프트, 뷰노가 유럽과 중국의 검진·진료 시장으로 판로를 넓혔다는 소식이다. 앞의 것은 국내 규제와 거버넌스의 문제이고, 뒤의 것은 수출과 산업의 문제다. 그러나 두 장면을 잇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 신뢰다.

먼저 공동선언을 보자. 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개인정보 보호를 최고경영자와 이사회 차원의 경영 핵심 과제로 격상하고,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방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기며, 서비스의 기획·개발·운영 전 과정에 보호 중심 설계(PbD)를 적용하기로 약속하였다. 선언에 그치지 않고 SK텔레콤은 5년간 7,000억 원을, KT는 5년간 2조 2,0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통신사가 개인정보 보호를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규정한 것이며, 이는 2027년 3월 시행되는 AI 특례 제도를 앞둔 선제적 포석이기도 하다.

SK텔레콤 · 5년 투자
7,000억 원
AI 거버넌스 · 프라이버시 퍼스트 문화
KT · 5년 투자
2조 2,000억 원
IT 인프라 현대화 · CPO 체계 확립

이 대목에서 흔한 오해가 하나 있다. 규제와 보호는 산업의 발목을 잡는 제약이며, 혁신은 규제가 느슨한 곳에서 더 빨리 자란다는 통념이다. 그러나 인공지능 산업의 실제 동학은 이 통념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데이터를 다루는 산업일수록, 그리고 그 데이터가 사람의 몸과 삶에 가까울수록, 신뢰는 진입의 전제 조건이 된다. 신뢰가 무너지면 시장 자체가 닫힌다. 통신 3사가 개인정보 보호를 경영의 최상위 의제로 끌어올린 것은 선의의 표명이 아니라, 신뢰 없이는 AI 서비스를 팔 수 없다는 냉정한 시장 인식의 산물로 읽어야 한다.

같은 날의 두 번째 장면은 이 인식이 이미 수출의 현장에서 증명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루닛은 유방암 검진 솔루션을 스웨덴 스톡홀름주 검진사업에 공급하며 달라르나주에 이어 두 번째 광역 단위 사업에 진입하였고, 코어라인소프트는 폐암 검진 인공지능을 독일·노르웨이·핀란드·영국·이탈리아에 공급하면서 독일에서만 올해 신규 계약 77건을 확보하였다. 뷰노는 중국 하이난성에서 2년 독점 판매계약을 체결하고 장쑤성에서 현지 플랫폼과의 연동을 마쳤다. 주목할 것은 이들이 파고든 영역의 성격이다. 유럽의 공공 암 검진과 중국의 병원 진료는 지구상에서 규제가 가장 까다롭고, 오류에 대한 사회적 허용치가 가장 낮은 시장이다. 인공지능이 영상의학 판독의 일부를 대체하려면, 규제 기관과 의료진과 환자 모두의 신뢰를 먼저 얻어야 한다.

국내의 엄격한 보호 체계는 수출을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라, 세계 시장이 요구하는 신뢰의 예행연습이 된다.

바로 여기서 두 장면이 하나의 논지로 수렴한다. 국내에서 통신사가 구축하려는 ‘신뢰 인프라’와, 국외에서 의료AI 기업이 이미 자산으로 삼고 있는 ‘신뢰’는 같은 것이다. 규제가 까다로운 시장을 뚫었다는 사실은, 거꾸로 그 기업이 검증·설명가능성·데이터 관리에서 세계적 수준의 규율을 내재화했음을 뜻한다. 개인정보 공동선언이 겨냥한 것도 결국 이 지점이다. 송경희 개인정보위원장의 말대로 개인정보 보호는 AI 산업이 ‘신뢰 인프라’를 갖추도록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선언과 투자 약속이 곧바로 신뢰로 환전되는 것은 아니다. 통신 3사가 최근 겪은 정보 유출 사고들이 이번 선언의 배경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뢰는 선언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고 없는 시간의 누적으로만 세워지며, 5년간의 투자 계획은 그 누적을 사겠다는 약속일 뿐 아직 실적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K-의료AI의 해외 계약도 임상 현장에서의 성능과 안전이 지속적으로 확인될 때에만 반복 거래로 이어진다. 신뢰는 벌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운 자산이다.

그럼에도 이날의 두 장면은 한국 인공지능 산업이 어디에서 경쟁력을 찾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가리킨다. 파라미터의 규모나 모델의 순위를 겨루는 소버린 담론의 이면에서, 실제 수출 성과는 규제가 가장 촘촘한 영역에서 신뢰를 확보한 응용 기업들이 만들어 내고 있다. 신뢰를 경영의 의제로 격상하는 일과 규제가 까다로운 시장을 뚫는 일은, 결국 같은 전략의 두 얼굴이다. 한국이 인공지능에서 팔 수 있는 가장 값진 상품은 어쩌면 모델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모델을 믿어도 좋다는 신뢰일지 모른다.


본 칼럼은 2026년 9월 28일 국내 보도를 바탕으로 작성한 논평이며, 특정 종목·기업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니다.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참고뉴스핌·ZDNet Korea, 개인정보위·통신3사 공동선언 (2026.09.28)
newspim.com/news/view/20260928000866
zdnet.co.kr/view/?no=20260928153633
전자신문, K-의료AI 해외 영토 확장 (2026.09.28)
etnews.com/202609280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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