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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를 'PBR'이 아니라 'PER'로 본다 — 반도체를 보는 눈이 바뀌고 있습니다 ①

world1000 2026. 7. 20. 06:24

이 글의 한 줄 요약 오늘 반도체가 크게 흔들렸지만, 시장 한켠에서는 "메모리 반도체를 이제 예전과 다른 눈으로 봐야 한다"는 관점이 자리를 넓히고 있습니다. 핵심은 메모리를 경기 타는 부품(PBR)이 아니라, 실적이 꾸준한 성장주(PER)로 보자는 것입니다. 그 전환의 열쇠가 바로 '장기공급계약(LTA)'입니다. 이번 1편은 그 논리를, 2편은 점검할 지표와 종목을 다룹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코스피가 6% 넘게 급락하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크게 밀렸습니다. 이런 날일수록 저는 주가의 오르내림보다 '이 산업을 어떤 눈으로 봐야 하는가'라는 근본 질문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마침 오늘 한 방송(채국장)에 나온 SK증권 한동희 애널리스트의 관점이 그 질문에 좋은 실마리를 줍니다. 그의 이야기를 제 시각으로 풀어 보겠습니다.


① PBR과 PER, 그게 뭔데요? — 그리고 왜 그동안 메모리는 'PBR'이었나

투자에서 회사의 값을 매기는 잣대는 여럿입니다. 그중 두 가지만 아시면 됩니다.

PBR(주가순자산비율): 회사가 가진 '재산(순자산)'에 견줘 주가를 보는 잣대입니다. "망해서 다 팔면 얼마 남나"에 가까운, 보수적인 눈입니다. PER(주가수익비율): 회사가 '버는 돈(이익)'에 견줘 주가를 보는 잣대입니다. "앞으로 꾸준히 이만큼 번다"는 믿음이 있을 때 쓰는 눈입니다.

그동안 시장은 메모리 반도체를 주로 PBR로 봤습니다. 왜일까요? 메모리가 '경기를 심하게 타는 사이클 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값이 좋을 때 반짝 벌다가, 공급이 넘치면 재고를 헐값에 떨이하며 적자를 내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그러니 시장은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그 이익을 믿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잘 벌어도 곧 꺾일 텐데"라는 의심 때문에, 이익(PER)이 아니라 재산(PBR)으로 값을 매긴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오래된 눈이 바뀌려 하고 있습니다. 메모리의 이익이 '한철 장사'가 아니라 '꾸준한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메모리도 이제 PER로, 즉 성장주의 눈으로 봐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이 관점의 핵심입니다.


② 전환의 열쇠 — '장기공급계약(LTA)'이 실적을 안정시킨다

무엇이 메모리의 이익을 꾸준하게 만들까요? 가장 중요한 것이 장기공급계약(LTA)입니다.

LTA(장기공급계약)란? 3~5년 같은 긴 기간의 물량과 가격을 미리 정해두고 파는 계약입니다. 그때그때 시세로 사고파는 대신, 미리 약속을 걸어두는 것입니다.

과거 메모리는 대부분 그때그때의 시세(현물가)로 거래됐기에, 값이 오르내릴 때마다 실적이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하지만 장기계약 비중이 커지면, 값이 잠시 출렁여도 실적은 계약해둔 수준에서 버텨줍니다. 실적의 바닥이 다져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일부 계약에서 가격 상한선을 없애 '오르는 만큼 다 받는' 구조까지 도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상승장에서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그 결과가 숫자로도 나타납니다. 증권가 추정에는 편차가 있지만, 한 곳(상상인증권)은 SK하이닉스의 2026년 2분기 영업이익을 66조 원대로 제시하며 목표주가를 380만 원으로 올렸습니다. "LTA 확대가 실적 변동성을 크게 줄인다"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경기를 타던 부품이, 미리 팔아둔 안정적 사업으로 성격을 바꾸고 있다는 뜻입니다.


③ 그런데 왜 시장이 흔들렸나 — 'LTA 가격 논란'과 오래된 트라우마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이 있습니다. 바로 이 LTA가, 최근 주가를 흔든 빌미가 되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발단은 "SK하이닉스가 장기계약으로 판 디램 가격(ASP)이 생각보다 낮더라"는 관측이었습니다. 업황이 이렇게 좋은데 계약 단가가 기대만큼 높지 않다면, 시장은 이렇게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고객이 값을 다 안 받아주기 시작한 것 아닌가? 그럼 곧 가격이 빠지고, 업황도 끝나는 것 아닌가?" 과거 여러 번 꼭지를 찍고 무너졌던 기억, 그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것입니다.

한동희 애널리스트의 반박은 명료합니다. "LTA의 본질은 조건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계약마다 물량, 기간, 위약 조항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가격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일부 계약의 낮은 가격 하나를 보고 전체를 "가격이 꺾였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입니다. 오히려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가격을 조금 양보했다면, 그 대가로 무엇을 얻었을까?" 더 많은 물량일 수도, 더 긴 계약일 수도, 고객과의 더 끈끈한 파트너십일 수도 있습니다. 업황이 이렇게 좋은데 아무것도 얻지 않고 그냥 싸게 팔았을 리는 없다는 것이죠.


④ 왜 하필 'SK하이닉스'만 그런 이야기가 나올까 — 메가 프로젝트의 그림자

그렇다면 왜 유독 SK하이닉스의 LTA에서 이런 논란이 나왔을까요? 단서는 SK그룹 전체의 큰 그림에 있습니다.

2026년 6월, 최태원 회장은 2100조 원 규모의 초대형 투자를 발표했습니다. AI 데이터센터에 1000조 원(총 15GW 규모, 1단계로 5GW 우선 조성), 반도체에 1100조 원(용인 D램 600조·청주 낸드 100조·서남권 400조)을 쏟겠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SK가 단순히 메모리를 파는 것을 넘어, 직접 AI 데이터센터를 짓고 운영하는 사업으로 나아간다는 데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LTA 가격 논란이 다르게 읽힙니다. 그룹이 데이터센터 사업을 하려면, 그 데이터센터를 채워줄 빅테크 고객과의 장기 파트너십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미 빅테크와 메모리 장기계약을 맺어두었는데, 그 빅테크를 자사 데이터센터의 고객(테넌트)으로 또 데려온다면, 관계는 2중·3중으로 강화됩니다. 그렇다면 메모리 가격을 조금 양보하더라도 그룹 차원에서는 얻는 것이 훨씬 클 수 있습니다. SK하이닉스가 언급한 '메모리 에저 서비스(MAS·메모리를 클라우드처럼 빌려주는 개념)'도 이런 큰 그림의 연장선입니다.

정리하면, 저는 오늘의 급락을 이렇게 봅니다. 시장은 메모리를 여전히 '가격이 꺾이면 끝'이라는 옛 사이클의 눈(PBR)으로 바라보며 흔들렸지만, 그 이면에서 메모리는 장기계약과 데이터센터라는 새 옷을 입고 '꾸준히 버는 사업'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입니다. 물론 이 전환이 완성됐다고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다만 오늘의 두려움이 '과거의 기억'에서 나온 것인지, '현재의 사실'에서 나온 것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좌가 무거웠을 오늘, 그 구분 하나만 챙겨두셔도 다음 장을 훨씬 담담하게 맞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전환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우리는 무엇을 보고 확인할 수 있을까요? 케펙스·유동성·현물가라는 세 개의 창과 종목 지도를 다음 2편에서 이어가겠습니다.


1편 핵심 3줄 정리

  1. 시장은 그동안 메모리를 경기 타는 부품(PBR)으로 봤지만, 실적이 꾸준해지면서 '성장주(PER)'로 보자는 관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2. 그 전환의 열쇠는 장기공급계약(LTA)으로, 실적 변동성을 줄여 이익의 바닥을 다집니다. SK하이닉스는 가격 상한을 없앤 계약까지 도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3. 최근 'LTA 가격이 낮다'는 우려로 주가가 흔들렸지만, LTA는 조건별로 가격이 다른 계약이며, 가격 양보의 대가로 물량·기간·파트너십을 얻었을 가능성을 함께 봐야 합니다.

오늘의 용어 정리

  • PBR / PER: PBR은 회사의 '재산'에, PER은 '버는 돈'에 견줘 주가를 보는 잣대. 메모리를 PBR에서 PER로 본다는 것은, 이익을 믿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 LTA(장기공급계약): 3~5년 물량·가격을 미리 정해 파는 계약. 실적을 안정시키는 핵심 장치입니다.
  • ASP(평균판매단가): 제품이 평균 얼마에 팔렸는지를 나타내는 값. 메모리 실적의 바로미터입니다.
  • MAS(메모리 에저 서비스): 메모리를 소유가 아니라 클라우드처럼 빌려 쓰게 하는 새로운 사업 개념.

참고 자료

  • 아이뉴스24 「SK하이닉스, 2분기 영업익 66조 전망…'LTA로 실적 변동성 축소'」
  • 뉴시스 「한국투자證 'SK하이닉스, HBM 고수익 장기화…목표가 380만원 유지'」
  • 머니투데이 「최태원 'AI 메가 프로젝트에 2100조 투자'」
  • 유튜브: 채국장 — SK증권 한동희 애널리스트 편(2026년 7월)

이 글은 산업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용 해설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실적 수치는 증권사 추정치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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