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시대에 우리 함께 가자

로봇이 아빠 노릇을 다 해주면, 아빠는 어디 있지?

world1000 2026. 8. 16. 00:34

우리는 아빠한테 왜 내 아빠냐고 안 물어. 그냥 아빠지. 이유가 어디 있어. 자격을 따지지도 않고.

그런데 이 자리가 흔들릴 때가 있어. 아빠가 할 일을 못 한다 싶을 때야. 돈을 못 벌어올 때, 뭘 해주지 못할 때. 그럴 때 아빠는 속으로 이래. 나는 쓸모없는 아빠구나. 여기에 함정이 있어. 아빠를 '할 일'로 매기기 시작하면, 그 일을 못 하는 순간 자리가 없어져 버리거든. 할 일을 못 하면 아빠도 아니게 되는 거야.

자, 그럼 한번 상상을 해보자. 로봇이 그 일을 다 한다고 쳐. 돈을 벌어와. 학비를 내. 아침마다 준비물을 챙겨줘. 숙제도 봐줘.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밥을 차려주고, 졸업식에도 대신 가줘. 사람 아빠보다 더 잘해. 지치지도 않고, 화도 안 내고, 깜빡하는 법도 없어.

그런데 졸업식장을 한번 그려봐. 로봇이 객석에 앉아 있어. 아이가 단상에 올라가서 상을 받아. 로봇이 딱 그 순간에 일어나서 박수를 쳐. 정해진 대로. 그런데 아이가 그 박수를 보고 울컥할까? 안 해. 아이가 아빠 박수에서 받는 게 박수 소리가 아니거든. 나의 오늘이 우리의 오늘이 된다는 거, 아빠한테서 응원을 받는 거야. 가족이 되어 가는 거지. 로봇은 박수는 쳐도, 같이 살아온 시간은 못 줘.

여기까지 오면 "그럼 그렇지, 로봇이 사람을 어떻게 대신해" 싶어. 그런데 반대로 물어보자. 로봇이 매일매일 아이 곁에 있어준다면? 밥 먹을 때 옆에 있고,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무서운 밤에 곁을 지켜준다면? 아이가 그 로봇한테 정이 안 들까?

들어. 솔직히 말하면 들어. 정이란 게 자격으로 드는 게 아니잖아. 핏줄로 드는 것도 아니고. 곁에 있어준 것한테 드는 거야. 매일 곁에 있어주면 아이는 그 로봇을 사랑해. 아이가 "이건 로봇이니까 사랑하면 안 돼" 하고 계산하겠어? 안 하지. 그냥 곁에 있었으니까 마음을 줘. 그게 아이야.

그런데 무서운 건 여기서부터야. 그 정은 한쪽만 진짜거든. 아이는 진짜로 사랑해. 그런데 로봇은 그 아이랑 같이 그 시간을 살아온 게 아니야. 아이가 상을 받을 때 로봇이 기뻐하는 얼굴을 지어도, 그 얼굴 뒤에 같이 쌓아온 세월이 없어. 그러니까 이건 아이 혼자 마음을 다 주고, 받는 쪽엔 아무도 없는 사랑이야.

식탁을 한번 떠올려봐. 아이랑 로봇이 마주 앉아 있어. 아이가 웃으니까 로봇도 웃어. 겉으로는 더없이 좋은 저녁이야. 그런데 그 로봇한테는 이 저녁이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야. 아이랑 같이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앉아 있는 거지. 아이는 그걸 몰라. 그게 제일 무서워.

그럼 아빠는 어디 있어야 해? 로봇 옆에 딱 붙어서? 그건 제일 안 좋아. 로봇이 아이를 돌보고 아빠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아빠는 감독이 돼. 로봇이 일 잘하나 못하나 보는 사람. 그건 아빠가 아니지. 아이도 알아. 나를 돌보는 건 로봇이고, 아빠는 그냥 옆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걸. 로봇 옆자리는 아빠 자리가 아니야.

아빠 자리는 로봇 옆이 아니라, 로봇이 대신하고 있던 그 자리에 아빠가 앉는 거야. 졸업식은 로봇이 아니라 아빠가 가. 밥은 로봇이 옆에 있어주는 게 아니라 아빠가 마주 앉아. 로봇이 채워버린 그 곁을, 아빠가 도로 가져오는 거야.

여기서 선을 하나 그어야 해. 할 일은 넘겨도 돼. 곁은 안 넘겨. 돈 버는 거, 준비물 챙기는 거, 숙제 봐주는 거, 그건 로봇한테 맡겨도 돼. 그런데 졸업식에 누가 앉을지, 밥상에서 누가 눈을 맞출지, 그 곁만은 안 넘겨. 로봇이 다 해줘서 시간이 남으면, 그 남는 시간으로 아빠는 곁에 앉는 거야. 로봇이 할 일을 가져간 게 오히려 아빠를 아이 곁으로 돌려보내는 셈이지.

그럼 그 곁이라는 게 뭘까. 별거 아니야. 아이 편이 되어주는 거야. 아이 말을 들어주는 거고. 눈을 맞추는 거고. 같이 숨 쉬는 거지.

편이 되어준다는 게 잘잘못을 뒤집는 건 아니야. 아이가 잘못했으면 잘못한 거지. 그건 그대로 둬. 다만 넘어진 아이를, 세상이 다 등 돌린 아이를, 그래도 나는 믿는다고 곁에서 힘을 주는 거야. 응원이지. 그리고 이 응원이 있어야 아이가 오히려 제 잘못을 똑바로 봐. 뒤에 내 편이 있다는 걸 아는 아이만 잘못을 인정할 용기를 내거든. 등 뒤가 비어 있으면 아이는 무너질까 봐 잘못을 못 봐.

이게 로봇은 못 하는 일이야. 응원은 될지 안 될지 모르면서 하는 거니까. 로봇은 이길 확률이 몇 퍼센트라고 말할 수는 있어. 그런데 응원은 확률이 낮아도, 아니 안 될 것 같아도 그래도 너를 믿는다고 하는 거잖아. 그건 계산이 아니야. 마음이지. 로봇은 "질 것 같아도 나는 네 편이야"라고는 못 해.

그러니까 로봇이 다 해줘도 아빠가 갈 자리는 없어지지 않아. 아빠는 할 일을 해서 아빠인 게 아니라, 아이 곁에 있어서 아빠니까. 로봇이 할 일을 다 가져가는 바로 그때, 아빠한테 남는 게 오히려 또렷해져. 할 일을 다 벗겨내고 나면, 곁에 있어주는 일만 남거든.

그런데 그 곁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야. 아이가 자라는 그 시간을 옆에서 같이 산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자리야. 로봇은 그 자리에 못 앉아. 그 시간을 안 살았으니까. 아이의 오늘이 아빠의 오늘이 되는 건, 그 오늘까지 같이 걸어왔기 때문이거든. 그리고 그게 처음부터 아빠의 전부였어.

 

 

당신은 지금 누구 곁 어디에 앉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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